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서 코난 도일 (문단 편집) = 사생활 = * 코난 도일이 직접 쓴 회고록에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언급돼 있다. 그가 아마추어 당구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들어갈 때, 참가자들 중 누군가로부터 흔히 볼 수 있는 녹색 당구 초크가 든 상자를 선물받은 일이 있었다. 코난 도일은 몇 달 동안 그 선물받은 초크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당구를 쳤다. 그런데 어느 날 초크로 큐 끝을 문지르다가 갑자기 초크가 안으로 함몰되었고, 이상해서 확인을 해 보니 초크 안은 비어 있었고 '''[[아르센 뤼팽]]이 [[셜록 홈즈]]'''에게라고 적힌 쪽지만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. * 1930년 10월 7일, [[영국]] 심령협회에서는 영매 아이린 가렛을 초청해 석달 전에 죽은 코난 도일의 영혼을 불러내기로 했는데, 나오라는 코난 도일은 나오지 않고 당시 [[영국]]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행선 R101호 추락 사건의 비행선 선장 카마이켈 어윈의 영혼을 소환해 당시 사건의 진상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. 비행선 R101호 추락 사건은 이 행사가 진행되기 사흘 전에 일어난 것으로 54명의 승객 가운데 6명만이 중화상을 입고 겨우 살았던 참사였다. 이 사건은 1987년 소년경향에서 별책 부록으로 준 세계의 괴담에서 실화라고 나오기도 했는데, 이 책자에 의하면 여자인 아이린 가렛의 입에서 나오던 목소리는 어윈의 목소리였지만, 그 목소리로 자신은 코난 도일이라고 했다. 하지만 어윈의 동료들과 유족들은 그건 어윈의 목소리였다고 기겁했으며 녹음까지 해서 도일의 친척들에게 들려주었으나 그런 건 안 믿는다면서 무시당했다고 한다. 어쨌든 어윈의 목소리로 자신은 도일이라고 하던 그것(?)은 추락 사건의 원인과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. * 위조된 고인류의 두개골로 유명한 [[필트다운 인]] 사건의 실제 주모자로 지목되기도 했다. 이 사건의 공식적인 주모자는 도슨이지만, 발표 당시부터 [[영국]]의 위대성을 [[진화론]]적으로 증명했다고 여겨진 발굴이 실은 발굴자의 아마추어적인 위조품을 이용한 사기극이었다는 진상이 드러났기 때문에[* 발굴된 시기가 영국이 전성기에 있었던 [[제1차 세계 대전]] 전인 1910년대 초반이고 진상이 폭로된 것은 [[영국]]이 몰락했음이 확실해진 1950년대. 이쯤 되면 누구라도 딴지를 걸고 넘어가게 될 지도.] 웬만한 고생물학자들이 많은 인사들을 대상으로 진범이라고 지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. 가령 [[스티븐 제이 굴드]]는 테야르 드 샤르댕이 진범이라고 주장하기도. 물론 현대에 와서 코난 도일이 범인이라는 주장은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. 도일은 [[고고학]]이나 생물의 뼈를 이어 붙이는 접합 작업에는 무지했기 때문이다. * [[제국주의]]를 찬성했는가 반대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. * 찬성했다 : [[보어 전쟁]]을 옹호하고 직접 참전까지 했으며 이후인 1902년 [[기사 작위]]를 받았다. 또한 [[네 사람의 서명]]에서는 도일이 [[세포이 항쟁]]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이 드러나 있는데 이는 색인종에 대하여 홈즈가 평가한 내용의 일부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. * 반대했다 : [[보어인]]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, 보어전쟁, 특히 제2차 보어전쟁은 제국주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쟁이라기보단 가해자들끼리의 전쟁에 가까웠다.[* 간단히 말하면 보어인은 남아프리카의 원주민이 아니라, 영국보다 먼저 식민지를 펴고 정착했던 [[네덜란드]]계 백인이었고, 이들이 세운 [[트란스발 공화국]]이나 [[오라녜 자유국]] 또한 백인 국가였다. 또, 이들은 영국보다 훨씬 더 인종차별과 식민지인들에 대한 탄압이 심했다.] 또한 코난 도일이 유난히 제국주의적 성향을 지녔다기 보다는, 지금은 비난을 받는 제국주의와 [[인종차별]]이 19세기 후반~20세기 초반까지는 당연한 것처럼([[백인의 의무]] 항목 참조.)인식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성이 있다. 실제로 도일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[[영국인]] 대부분이 제국주의에 호의적이었다. 공개적으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국 사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.[* 대표적인 인물로는 [[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]]. [[보물섬]], [[지킬 박사와 하이드]]로 유명한 그는 조국 영국이 그가 마지막 삶을 보낸 [[사모아]]에서 벌인 학살 및 이간질을 목격하고 그에 대해 비난하는 글을 썼으나 당시 영국 어느 신문사도, 어느 출판사도 그 글을 책으로 내주지 않았다. 스티븐슨의 지인들도 그가 사모아에 살기 망정이지 영국에서 그랬다면 편하게 지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.][* [[미국]]의 [[마크 트웨인]]도 미국의 [[필리핀]] 침공을 비난하는 등 반제국주의의 모습을 보였으나 그 당시에는 드문 경우였다.] [[모리스 르블랑]]도 그렇고,[* [[아르센 뤼팽]]의 말로 '[[프랑스]]를 위해서라면 [[아프리카]] 야만인들을 내가 지배하게 도울 수 있다'는 대사를 넣었다.]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[[허버트 조지 웰즈]] 같은 경우는 [[백인 우월주의]]까지 더 곁들어 노골적이었다.[* 물론 [[우주전쟁]]에서 보듯 제국주의를 풍자하는 듯한 소설도 썼다.] 하지만 위에 나온 것처럼 '''[[아일랜드]] 독립에 찬성''' 하거나 누명을 쓴 인도계 영국인을 위해 투쟁한 것 등과 같이 오히려 제국주의와 반대되는 행동도 많이 했다. * 코난 도일은 1902년 [[기사 작위]]를 받은 후 [[잉글랜드]] 남동쪽에 위치한 [[서리(잉글랜드)|서리]]주의 부지사(Deputy Lieutenant)로 임명되기도 했다. 또한 지역의회 선거에 여러 번 출마했지만 낙선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. 아래는 서리주 부지사 복장을 착용한 코난 도일의 모습이다. [[파일:793px-1902-arthur-conan-doyle-wearing-his-deputy-lieutenant-uniform.jpg]] [[파일:1902-arthur-conan-doyle-wearing-his-deputy-lieutenant-uniform2.jpg]] [[파일:860px-1902-arthur-conan-doyle-wearing-his-deputy-lieutenant-uniform3.jpg]] [[파일:The_Book_o_the_Bri_3206554e.jpg]] <해당 단편이 수록된 책 표지>. 사진 출처: SWNS * [[데일리 텔레그래프]]에 의하면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[[셜록 홈즈]] 단편이 발견됐다고 한다. 구체적으로는 [[스코틀랜드]]에 살고 있는 월터 엘리엇이라는 남성이 최근 자신의 집 [[다락방]]을 청소하다가 약 50년 전에 친구에게 얻은 책에서「셜록 홈즈: 추리에 의하여 보더 보그와 브리그 바자를 발견하다」(Sherlock Homes: Discovering the Border Burghs and, by deduction, the Brig Bazaar)라는 제목의 단편을 발견했다고 전했다. 단편이 수록된 책은 The Book o' The Brig라는 것으로 1902년 [[스코틀랜드]] 셀커크 지역에 위치한 다리가 홍수로 망가지자 이후인 1904년에 마을 주민들이 다리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. 따라서 이 작품은 당시 유명 작가이자 [[기사 작위]]를 받았던 코난 도일이 위와 같은 목적을 가진 주민들로부터 원고를 청탁받은 뒤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.[[https://www.telegraph.co.uk/news/newstopics/howaboutthat/11425042/Read-the-lost-Sherlock-Holmes-story-found-in-an-attic.html| 해당 단편의 발견 소식과 원문 전체를 공개한 텔레그래프 기사.]],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421/0001279246?sid=103|관련기사]] [youtube(51LKSHt63BI)] [[셜록 홈즈]] 단편을 발견한 월터 엘리엇의 책 소개 동영상. * 예를 들어 [[메리 셀러스트호 사건]]을 소재로 하는 J. 하바쿡 제임스의 증언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콘힐 매거진이라는 [[잡지]]에 익명으로 투고하여 1884년 1월호에 실렸으나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. * 1885년에는 진료하던 환자의 누나였으며 자신보다 2살 연상이었던 루이자 호킨스(1857~1906)와 결혼했다. 1889년에 첫째 딸인 메리가 태어났으며, 1892년에는 첫째 아들인 킹즐리가 태어난다. 도일과 루이자의 결혼 생활은 루이자가 [[폐결핵]]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다가 끝내 사망한 1906년까지 지속된다. 이후 도일은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15살 연하의 여성 진 레키(1874~1940)와 1907년에 두 번째 결혼을 했으며 1909년에 둘째 아들 데니스가, 1910년에는 셋째 아들 에이드리언, 1912년에는 둘째 딸이자 막내인 레나 진이 각각 태어나면서 모두 5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. 도일과 레키의 결혼 생활은 지속되다가 도일이 [[심장마비]]로 사망한 1930년에 끝나게 된다. 도일과 레키의 셋째 아들인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은 [[존 딕슨 카]]와 함께 아버지 아서 코난 도일이 생전에 미처 다 투고하지 못한 미공개 단편들을 모아 '''본인이 아버지가 쓰다 만 미완성 원고를 마저 완성하여''' "[[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]](The Exploits of Sherlock Holmes)" 라는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. 이 책은 [[셜로키언]]들과 그 외의 추리소설 팬들 사이에서 굉장히 평가가 좋았으며 한국에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. * [[IMDb]]에 따르면 코난 도일의 키는 185cm라고 한다. 코난 도일이 1859년에 태어난 것을 감안하면 굉장한 체격인 것이다. * 두 번의 결혼에서 다섯 명의 자녀[* 장녀 메리 루이즈(1889-1976), 장남 킹슬리(1892-1918), 차남 데니스(1909-1955), 3남 에이드리언(1910-1970), 차녀 레나 진(1912-1997). 세 명의 아들은 셋째를 제외하고 만 60세를 못 넘겼고 두 명의 딸들은 만 80세를 넘겨 장수했다.]를 얻었지만, 다섯 명 모두 자녀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으므로 아서 이그네이셔스 코난 도일의 직계 후손은 존재하지 않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